2011-10-05

"Stay Hungry. Stay Foolish." by Steve Jobs

I am honored to be with you today at your commencement from one ofst universities in the world.
먼저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이 곳에서 여러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I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Truth be told, this is the closest I've ever gotten to a college graduation.
저는 대학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솔직히, 태어나서 대학교 졸업식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것은 처음이네요.

Today I want to tell you three stories from my life. That's it. No big deal. Just three stories. The first story is about connecting the dots.
오늘, 저는 여러분께 제가 살아오면서 겪었던 세 가지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그게 답니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구요. 딱 세가지만요 먼저, 인생의 전환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I dropped out of Reed College after the first 6 months, but then stayed around as a drop-in for another 18 months or so before I really quit. So why did I drop out?
전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습니다. 그래도 일년 반 정도는 도강을 듣다,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왜 자퇴했을까요?

It started before I was born. My biological mother was a young, unwed college graduate student, and she decided to put me up for adoption.
그 것은 제가 태어나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대학원생인 젊은 미혼모였습니다. 그래서 저를 입양보내기로 결심했던 거지요.

She felt very strongly that I should be adopted by college graduates, so everything was all set for me to be adopted at birth by a lawyer and his wife.
그녀는 제 미래를 생각해, 대학 정도는 졸업한 교양있는 사람이 양부모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태어나자마자 변호사 가정에 입양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Except that when I popped out they decided at the last minute that they really wanted a girl. So my parents, who were on a waiting list, got a call in the middle of the night asking: "We have an unexpected baby boy; do you want him?" They said: "Of course."
그들은 여자 아이를 원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들 대신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님들은 한 밤 중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 "어떡하죠? 예정에 없던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래도 입양하실 건가요?" "물론이죠"

My biological mother later found out that my mo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college and that my father had never graduated from high school. She refused to sign the final adoption papers.
저의 양어머니는 대졸자도 아니었고,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도 졸업 못한 사람이라는걸 저의 친어머니는 나중에 알고서 입양동의서 쓰기를 거부했습니다

She only relented a few months later when my parents promised that I would someday go to college. And 17 years later I did go to college.
친어머니는 양부모님들이 저를 꼭 대학까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한 후 몇개월이 지나서야 화가 풀렸습니다. 17년후, 저는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But I naively chose a college that was almost as expensive as Stanford, and all of my working-class parents' savings were being spent on my college tuition.
그러나 저는 멍청하게도 바로 이 곳, 스탠포드의 학비와 맞먹는 값비싼 학교를 선택했습니다^^ 평범한 노동자였던 부모님이 힘들게 모아뒀던 돈이 모두 제 학비로 들어갔습니다.

After six months, I couldn't see the value in it. I had no idea what I wanted to do with my life and no idea how college was going to help me figure it out.
결국 6개월 후, 저는 대학 공부가 그만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대학교육이 그 것에 얼마나 어떻게 도움이 될지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And here I was spending all of the money my parents had saved their entire life. So I decided to drop out and trust that it would all work out OK.
게다가 양부모님들이 평생토록 모은 재산이 전부 제 학비로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다 잘 될거라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It was pretty scary at the time, but looking back it was one of the best decisions I ever made. The minute I dropped out I could stop taking the required classes that didn't interest me, and begin dropping in on the ones that looked interesting.
당시에는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았을때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자퇴한 순간, 흥미없던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은 그만두고 관심있는 강의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It wasn't all romantic. I didn't have a dorm room, so I slept on the floor in friends' rooms, I returned coke bottles for the 5¢ deposits to buy food with, and I would walk the 7 miles across town every Sunday night to get one good meal a week at the Hare Krishna temple.
그렇다고 꼭 낭만적인 것만도 아니었습니다. 전 기숙사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에 친구 집 마룻바닥에 자기도 했고 한 병당 5센트씩하는 코카콜라 빈병을 팔아서 먹을 것을 사기도 했습니다. 또 매주 일요일,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기 위해 7마일이나 걸어서 하레 크리슈나 사원의 예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I loved it. And much of what I stumbled into by following my curiosity and intuition turned out to be priceless later on.
맛있더군요^^ 당시 순전히 호기와 직감만을 믿고 저지른 일들이 후에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Let me give you one example: Reed College at that time offered perhaps the best calligraphy instruction in the country. Throughout the campus every poster, every label on every drawer, was beautifully hand calligraphed.
예를 든다면 그 당시 리드 칼리지는 아마 미국 최고의 서체 교육을 제공했던 것 같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은 너무 아름다웠구요.

Because I had dropped out and didn't have to take the normal classes, I decided to take a calligraphy class to learn how to do this.
어차피 자퇴한 상황이라, 정규 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서체에 대해서 배워보기로 마음먹고 서체 수업을 들었습니다.

I learned about serif and san serif typefaces, about varying the amount of space between different letter combinations, about what makes great typography great. It was beautiful, historical, artistically subtle in a way that science can't capture, and I found it fascinating.

그 때 저는 세리프와 산 세리프체를, 다른 글씨의 조합간의 그 여백의 다양함을, 무엇이 위대한 타이포그래피를 위대하게 만드는 지를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따라하기 힘든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었고, 전 매료되었습니다.

None of this had even a hope of any practical application in my life. But ten years later, when we were designing the first Macintosh computer, it all came back to me.
이런 것들 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를 구상할 때, 그 것들은 고스란히 빛을 발했습니다.

And we designed it all into the Mac. It was the first computer with beautiful typography. If I had never dropped in on that single course in college, the Mac would have never had multiple typefaces or proportionally spaced fonts. And since Windows just copied the Mac, it's likely that no personal computer would have them.
우리가 설계한 매킨토시에 그 기능을 모두 집어넣었으니까요.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다면 매킨토시의 복수서체 기능이나 자동 자간 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이고 맥을 따라한 윈도우도 그런 기능이 없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겁니다.

If I had never dropped out, I would have never dropped in on this calligraphy class, and personal computers might not have the wonderful typography that they do.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다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결국 개인용 컴퓨터가 오늘날처럼 뛰어난 글씨체들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겁니다.

Of course it was impossible to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when I was in college.
But it was very, very clear looking backwards ten years later.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는 그 순간들이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Again, you can't connect the dots looking forward; you can only connect them looking backwards.
달리 말하자면,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So you have to trust that the dots will somehow connect in your future.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순간들이 미래에 어떤식으로든지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만 합니다.

You have to trust in something - your gut, destiny, life, karma, whatever.
여러분들은 자신의 배짱, 운명, 인생, 카르마(업) 등 무엇이든지 간에 '그 무엇'에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This approach has never let me down, and i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in my life.
이런 믿음이 저를 실망시킨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제 인생에서 남들과는 다른 모든 '차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My second story is about love and loss.
I was lucky I found what I loved to do early in life.
두번째는 사랑과 상실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Woz and I started Apple in my parents garage when I was 20.
제가 20살 때, 부모님의 차고에서 워즈(스티브 워즈니악)와 함께 애플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We worked hard, and in 10 years Apple had grown from just the two of us in a garage into a $2 billion company with over 4000 employees.
우리는 열심히 일해서, 차고에서 2명으로 시작한 애플은 10년 후에 4000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2백억달러짜리 기업이 되었습니다.

We had just released our finest creation - the Macintosh - a year earlier, and I had just turned 30. And then I got fired.
제 나이 29살, 우리는 최고의 작품인 매킨토시를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듬해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How can you get fired from a company you started?
내가 세운 회사에서 내가 해고 당하다니!

Well, as Apple grew we hired someone who I thought was very talented to run the company with me,
and for the first year or so things went well.
당시, 애플이 점점 성장하면서, 저는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데려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1년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But then our visions of the future began to diverge and eventually we had a falling out.
그런데 언젠가부터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 둘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When we did, our Board of Directors sided with him. So at 30 I was out. And very publicly out.
이 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 것도 아주 공공연하게.

What had been the focus of my entire adult life was gone, and it was devastating.
저는 인생의 촛점을 잃어버렸고, 뭐라 말할 수 없는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I really didn't know what to do for a few months.
전 정말 말 그대로, 몇 개월 동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답니다

I felt that I had let the previous generation of entrepreneurs down - that I had dropped the baton as it was being passed to me.
I met with David Packard and Bob Noyce and tried to apologize for screwing up so badly.
마치 달리기 계주에서 바톤을 놓친 선수처럼, 선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송구스런 마음이 들었고
데이비드 패커드(HP의 공동 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 창업자)를 만나 이렇게 실패한 것에 대해 사과하려했습니다.

I was a very public failure, and I even thought about running away from the valley.
저는 완전히 '공공의 실패작'으로 전락했고, 실리콘 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But something slowly began to dawn on me.
그러나 제 맘 속에는 뭔가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I still loved what I did. The turn of events at Apple had not changed that one bit.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고,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조차도 그런 마음들을 꺾지 못했습니다.

I had been rejected, but I was still in love. And so I decided to start over.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I didn't see it then, but it turned out that getting fired from Apple was the best thing that could have ever happened to me.
당시에는 몰랐지만, 애플에서 해고당한 것은 제 인생 최고의 사건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The heaviness of being successful was replaced by the lightness of being a beginner again, less sure about everything.
It freed me to enter one of the most creative periods of my life.
그 사건으로 인해 저는 성공이란 중압감에서 벗어나서 초심자의 마음으로 돌아가 자유를 만끽하며,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 수 있게 됐습니다.

During the next five years, I started a company named NeXT, another company named Pixar,and fell in love with an amazing woman who would become my wife.
이후 5년동안 저는 '넥스트', '픽사'를 만들고, 그리고 지금 제 아내가 되어준 그녀와 사랑에 빠져버렸습니다.

Pixar went on to create the world's first computer animated feature film, Toy Story, and is now the most successful animation studio in the world.
픽사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In a remarkable turn of events, Apple bought NeXT, I retuned to Apple, and the technology we developed at NeXT is at the heart of Apple's current renaissance.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넥스트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 후, 넥스트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And Laurene and I have a wonderful family together.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I'm pretty sure none of this would have happened if I hadn't been fired from Apple.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런 기쁜 일들중 어떤 한가지도 겪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It was awful tasting medicine, but I guess the patient needed it.
정말 독하고 쓰디 쓴 약이었지만, 이게 필요한 환자도 있는가봅니다.

Sometimes life hits you in the head with a brick. Don't lose faith.
때로 인생이 당신의 뒷통수를 때리더라도, 결코 믿음을 잃지 마십시오.

I'm convinced that the only thing that kept me going was that I loved what I did.
전 반드시 인생에서 해야할, 제가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에, 반드시 이겨낸다고 확신했습니다.

You've got to find what you love. And that is as true for your work as it is for your lovers.
당신이 사랑하는 것을 찾아보세요. 사랑하는 사람이 내게 먼저 다가오지 않듯, 일도 그런 것이죠.

Your work is going to fill a large part of your life,
and the only way to be truly satisfied is to do what you believe is great work.
'당신의 일'은 당신의 인생의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 거대한 시간 속에서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스스로가 위대한 일을 한다고 자부하는 것입니다.

And the only way to do great work is to love what you do.
If you haven't found it yet, keep looking. Don't settle. As with all matters of the heart, you'll know when you find it.
자신의 일을 위대하다고 자부할 수 있을 때는, 사랑하는 일을 하고있는 그 순간 뿐입니다.
지금도 찾지 못했거나, 잘 모르겠다해도 주저앉지 말고 포기하지 마세요. 전심을 다하면 반드시 찾을 수 있습니다.

And, like any great relationship, it just gets better and better as the years roll on.
So keep looking until you find it. Don't settle.
일단 한 번 찾아낸다면, 서로 사랑하는 연인들처럼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욱 더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니 그 것들을 찾아낼 때까지 포기하지 마세요. 현실에 주저앉지 마세요

My third story is about death.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When I was 17, I read a quote that went something like: "If you live each day as if it was your last, someday you'll most certainly be right."
17살 때, 이런 경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 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바른 길에 서 있을 것이다

It made an impression on me, and since then, for the past 33 years! ,
I have looked in the mirror every morning and asked myself:
이 글은 그 후 33년동안 저에게 감명을 주었습니다.
저는 매일아침 거울을 보면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If today were the last day of my life, would I want to do what I am about to do today?"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And whenever the answer has been "No" for too many days in a row, I know I need to change something.
아니오!라는 답이 계속 나온다면, 다른 것을 해야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Remembering that I'll be dead soon is the most important tool I've ever encountered to help me make the big choices in life.
인생의 중요한 순간마다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명심하는 것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도구가 됩니다.

Because almost everything ?
왜냐구요?

all external expectations, all pride, all fear of embarrassment or failure - these things just fall away in the face of death, leaving only what is truly important.
외부의 기대, 각종 자부심과 자만심. 수치스러움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들은 '죽음' 을 직면해서는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 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Remembering that you are going to die is the best way I know to avoid the trap of thinking you have something to lose.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고의 길입니다.

You are already naked. There is no reason not to follow your heart.
여러분들이 지금 모두 잃어버린 상태라면, 더이상 잃을 것도 없기에 본능에 충실할 수 밖에 없습니다.

About a year ago I was diagnosed with cancer.
I had a scan at 7:30 in the morning, and it clearly showed a tumor on my pancreas.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 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이미 췌장에 종양이 있었습니다.

I didn't even know what a pancreas was.
The doctors told me this was almost certainly a type of cancer that is incurable, and that I should expect to live no longer than three to six months.
그전까지는 췌장이란 게 뭔지도 몰랐는데요.
의사들은 저에게 거의 치료가 불가능한 암의 종류이며, 길어야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말했습니다.

My doctor advised me to go home and get my affairs in order, which is doctor's code for prepare to die.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준비하라는 뜻이었죠.

It means to try to tell your kids everything you thought you'd have the next 10 years to tell them in just a few months.
그 것은 내 아이들에게 10년동안 해줄수 있는 것을 단 몇달안에 다 해치워야된단 말이었고

It means to make sure everything is buttoned up so that it will be as easy as possible for your family.
It means to say your goodbyes.
임종 시에 사람들이 받을 충격이 덜하도록 매사를 정리하란 말이었고 작별인사를 준비하라는 말이었습니다.

I lived with that diagnosis all day.
전 하루종일 진단을 받았습니다.

Later that evening I had a biopsy, where they stuck an endoscope down my throat, through my stomach and into my intestines, put a needle into my pancreas and got a few cells from the tumor.
그 날 저녁 목, 위장을 지나 장까지 내시경을 넣어서, 췌장에 바늘을 넣어 암세포를 채취해 조직검사를 받았습니다.

I was sedated, but my wife, who was there, told me that when they viewed the cells under a microscope
the doctors started crying because it turned out to be a very rare form of pancreatic cancer that is curable with surgery.
저는 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한 결과 치료가 가능한 아주 희귀한 췌장암으로써, 의사들까지도 기뻐서 눈물을 글썽였다고 합니다.

I had the surgery and I'm fine now.
저는 수술을 받았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This was the closest I've been to facing death, and I hope its the closest I get for a few more decades.
그 때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도 수십년간은 그렇게 가까이 가고 싶지 않습니다^^

Having lived through it, I can now say this to you with a bit more certainty than when death was a useful but purely intellectual concept:
이런 경험을 해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단 것을 머리로만 알고 있을 때보다 더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No one wants to die. Even people who want to go to heaven don't want to die to get there.
아무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조차도 그곳에 가기위해 죽고 싶어하지는 않죠.

And yet death is the destination we all share. No one has ever escaped it.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모두의 숙명입니다. 아무도 피할 수 없죠.

And that is as it should be, because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리고 그래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이니까요.

It is Life's change agent. It clears out the old to make way for the new.
죽음은 '인생들'을 변화시킵니다. 죽음은 새로운 것이 헌 것을 대체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Right now the new is you, but someday not too long from now, you will gradually become the old and be cleared away.
지금의 여러분들은 그 중에 '새로움'이란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머지 않은때에 여러분들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그 자리를 물려줘야할 것입니다.

Sorry to be so dramatic, but it is quite true.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사실이 그렇습니다.

Your time is limited, so don't waste it living someone else's life.
여러분의 삶은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삶을 살면서 여러분의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Don't be trapped by dogma - which is living with the results of other people's thinking.
도그마-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의한 삶-에 얽매이지 마십시오.

Don't let the noise of other's opinions drown out your own inner voice.
타인의 소리들이 여러분들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못하게 하세요

And most important, have the courage to follow your heart and intuition.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과 영감을 따르는 용기를 가지는 것입니다.

They somehow already know what you truly want to become. Everything else is secondary.
이미 마음과 영감은 당신이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나머지 것들은 부차적인 것이죠.

When I was young, there was an amazing publication called The Whole Earth Catalog, which was one of the bibles of my generation.
제가 어릴 때, 제 나이 또래라면 다 알만한 '지구 백과'란 책이 있었습니다.

It was created by a fellow named Stewart Brand not far from here in Menlo Park, and he brought it to life with his poetic touch.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먼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자신의 모든 걸 불어넣은 책이었지요.

This was in the late 1960's, before personal computers and desktop publishing, so it was all made with typewriters, scissors, and polaroid cameras.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노이드로 그 책을 만들었습니다.

It was sort of like Google in paperback form, 35 years before Google came along: it was idealistic, and overflowing with neat tools and great notions.
35년 전의 책으로 된 구글이라고나 할까요.
그 책은 위대한 의지와 아주 간단한 도구만으로 만들어진 역작이었습니다.

Stewart and his team put out several issues of The Whole Earth Catalog, and then when it had run its course, they put out a final issue.
스튜어트와 친구들은 몇 번의 개정판을 내놓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엔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It was the mid-1970s, and I was your age.
그 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 때였죠.

On the back cover of their final issue was a photograph of an early morning country road, the kind you might find yourself hitchhiking on if you were so adventurous.
최종판의 뒤쪽 표지에는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아마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히치하이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Beneath it were the words: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 "Stay Hungry. Stay Foolish."

It was their farewell message as they signed off. "Stay Hungry. Stay Foolish."
"Stay Hungry. Stay Foolish." 그 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And I have always wished that for myself. And now, as you graduate to begin anew, I wish that for you.
그리고 저는 저 자신에 대해 항상 그러하길 바래왔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졸업합니다.
저는 여러분에게도 그러하길 바랍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Thank you all very much.

2011-04-25

내가 보는 세상에서 내 인생을 살자!

다른 사람이 만든 세상에서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지말고

네가 보는 세상에서 네 인생을 살아라.

법륜 스님.

2011-04-11

부처가 말하는 깨달음이란 (정현철님의 글)

불교 가르침대로 보면, 집착을 버려야 행복을 얻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걸 지엽적인 의미로 보면 돈, 명예, 등 그런 것일 테지만 그러나 보다 정확한,, 진짜 근본적으로 버리라는 것은 자기 에고인데요. 사실, 돈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이나 지나친 무소유 관념, 그런 것도 제가 볼 떈 오히려 또다른 집착 같아요.. 단지 방향만 다를 뿐,,,

자신의 에고를 버리고 진아(참다운 나)를 깨달을 때 세상의 근본적인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것... 이게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던데,,, 어떤 명상 책을 봐도 끊임없이 진아를 깨달으라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그걸 알아야 가짜 나의 정체를 알 수 있게 되고 그래야 거기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

불교에서는 감정을 에고의 산물로 보고 있습니다.. 거기서 말하는 해탈은 감정적인 고통을 피하고 즐거우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되려 그런 감정 자체를 초월하라는 것,.,.
기쁨과 고통을 피하지 말고 온전히 겪되, 거기에 지배당하지 말라는 것..
철저히 모든 감정을 겪되 감정의 노예가 되지 말고 주인이 되라는 것이고, 진아를 깨달을 때만이 그것이 가능하다 말하는데요.

화가 나면,, 사람들은 그 감정에 따라 행동합니다. 왜냐면, 내가 화를 내는 거니까..
화 = 나. , 그래서 감정이 시키는대로 다 하죠. 화가 나면 때리고, 두려우면 도망가고.. 만약 화를 참아야 될 상황이라면 마치 자신이 굴복한 듯한 대단한 굴욕감을 느끼죠. 그 화는 곧 나니까

반면 불교에서는 그걸 에고의 산물이라 보기 때문에
화, = 나 가 아니라 내가 화라는 감정을 가진 것이고,, 화라는 감정과 나를 분리합니다. 그럴 때, 감정을 객관적으로 관조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 우린 고통이란 감정마져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감정적으로 괴롭지만 그걸 즐긴다?? 얼핏 모순된 말 같지만, 진아를 깨달으면 그게 가능하고 우린 이미 그런 모순된 상황을 다들 경험했습니다, 다만 자신의 경험에서 깨닫지 못할 뿐,...


진아를 깨닫고 못 개달을 때의 감정적인 고통의 차이,, 그걸 이해하기 쉽게 말해 보면,
공포영화 볼 때,, 놀이기구에서 느끼는 그 공포를 우리는 즐깁니다.,,, 즉 그것이 어떤 감정이든 감정 자체는 즐길 수 있습니다. 근데 같은 감정이여도 살인마 나오는 공포영화는 즐기지만 실제 내가 살인마에게 쫓기면서 느끼는 공포는 즐기지 못합니다.
이게 바로 똑같은 공포를 느껴도 진아를 깨달은 사람과 못 깨달은 사람이 느끼는 차이 입니다.
진아를 깨달으면 우리가 겪는 세상의 모든 감정이 이 공포영화 볼 때처럼,, 즐길 수 있게 된다는 것, 그럴 때 우리는 감정적인 고통을 느끼되, 거기에 매몰되서 휩쓸리지 않게 돼죠. 공포영화 볼 떄 무섭지만 그게 실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우린 그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고 중심을 지킬 수 있죠.

부처가 말하는 해탈 한다는 것, 사바 세계의 고통에서 벗어난다는 것,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을 의미 합니다.



이렇게 결코 흔들리지 않는 자신의 중심,,, 즉 진아를 깨달으면 우린 더 이상 어떤 고통도 두렵지 않습니다. 되려 세상의 모든 기쁨과 고통이란 감정을 즐기게 됩니다.
진짜 삶을 살게 되는 거죠. 날씨를 봐도 좋은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는 것처럼 인생도 마찬가지인데 즐거울 땐 즐거움을 느끼고 슬플 땐 슬픔을 철저히 느끼고,
근본적으로 모든 순간을 철저히 느끼는 것, 이게 바로 살아있음을 즐기는 것이죠.
죽으면 아무 것도 못 느끼니까...

부처가 생사를 초월한했다는 말 역시 이와 일맥상통하는데 우리의 진아는 살고 죽는 게 없습니다. 우리의 진아는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존해하던 그것 입니다.
자기가 태어나기 이전에 나는 뭐였을까요? 그게 바로 진아 입니다.

진아를 깨닫는다는 것은 애초에 살고 죽고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
부처는 그걸 깨닫고 생사를 초월햇다고 말했죠.
더 쉽게 예를 들면, 영화 매트릭스를 보면, 매트릭스 안에서의 죽음(에고의 소멸),,,, 그렇지만 우리 진짜 몸(진아)은 매트릭스 기계 안에 있죠. 매트릭스 안의 가상 현실에서의 죽음은 진짜 자기가 죽은 게 아닙니다.
부처는 이 세계를 매트릭스 안의 가상현실처럼 본 거죠. 매트릭스 안에서 우리가 ~나~ 라고 알고 있는 존재는 에고일 뿐이고 에고의 죽음일 뿐,, 즉 진아를 깨달을 때만이 그런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고 근본적으로 생사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부처가 생사를 초월했다는 건 애초에 살고 죽는 게 없다는 걸 개달았다는 것 입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점은,,
아무리 깨달음의 경지가 높고 어쩌고 해도 사실 살면서 감정적인 고통은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인간의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부위를 제거하지 않는 이상 그건 불가능 합니다. . 부처 역시 살아 생전 분명 제자들에게 화내고 스스로 자책하고 다른 인간들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겁니다. 그도 인간이기 때문에 보나마나죠.
, 부처는 감정적인 즐거움과 평화를 추구하고 고통을 피한 게 아니라 아예 감정을 초월하라고 가르쳤죠. 감정을 초워랬을 때 거기에 진정한 평화가 있다 말합니다. 그 평화는 감정적인 쾌락, 즐거움 그런 것과는 좀 다른 의미.

여기서 또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감정을 초월하라는 말이 감정을 느끼지 말고 억압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감정에 매몰되지 말라는 거죠.

그리고 사실 두려움이나 불안등의 감정이 고통스럽다고 그런 감정을 피하고 억압하면 되려 그게 지나가지 못하고 자기 내면에 쌓이게 되서 더 고통을 겪는데요.
그래서 심리학 관련 학계나 각지의 명상 단체 등에서는 마음껏 자기 분노와 두려움의 감정을 표현하는 곳이 있습니다. 아마 티비에서 본 분도 있을 건데 미친듯이 울고 춤추고 하는 그런 곳이 잇어요, 교회에서도 보면 아주 미친년처럼 울어되는 사람들이 잇는데 그게 다 자기 감정 정화하는 거죠. 그런 사람들은 교회나가는 게 큰 도움이 됩ㄴ디ㅏ.
두려우면 그걸 억압하지 말고 더욱 과장해서 두려워하면, 되려 그런 감정들은 더 빨리 지나가기 때문에 그 두려움은 사라지고,,,,
울지 말라고 하면 더욱 울음이 나는 현상,. 웃지 말라고 하면 더욱 웃음이 나고,,,, 자살시도했다가 병원에서 깨어난 사람은 당장은 엄청난 삶의 욕구를 느낀다고 하네요.


글이 기니 여기서 끝내고,
다음에 시간 날 때 화를 다루는 방법에 대해 적어 보겠습니다. 솔직히 여기까지 누가 읽어 보기나 할까 싶긴 한데,

화라는 감정을 다루는 시중의 책들을 들여다 본 결과, 부분적으론 괜찮긴 한데 완전 만족스런 책은 단 한 권도 없었습니다. 화는 절대 참아선 안 되죠. 다만 표현하는 방법의 문제 입니다.